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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청소 우려에 주민 대탈출…긴장 고조 '캅카스의 화약고'

[선데이 모닝 키플랫폼] 글로벌 스캐너 #50_"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분쟁"

최성근 김상희 | 2023.10.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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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스=AP/뉴시스] 26일(현지시각) 아제르바이잔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대피한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이 트럭을 타고 아르메니아 고리스로 향하고 있다. 아르메니아 정부는 나고르노-카라바흐 내 아르메니아계 주민 6500여 명이 아르메니아로 탈출했다고 전했으며 러시아는 지역 내 러시아 평화유지군이 이들의 대피를 돕고 있다고 밝혔다. 2023.09.26.
최근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분쟁 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아제르바이잔 정부가 군사작전을 실시하면서 전쟁 위기가 고조됐다. 이 지역은 캅카스산맥 고원 지대에 자리 잡고 있어 '캅카스의 화약고'라고 불린다.

하루 만에 휴전 합의가 이뤄졌지만 인종청소를 우려한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이 대탈출을 시작하는 등 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글로벌 스캐너>는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분쟁의 배경과 향후 전망을 살펴봤다.



분쟁 끊이지 않는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지난 19일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아르메니아 자치 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 포격을 가했다. 아제르바이잔은 자국 군인이 지뢰 폭발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를 테러로 규정하고, 반테러를 명분으로 공격을 가했다. 이번 포격으로 민간인과 군인을 포함 200여 명이 사망하고 40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전쟁 위기가 커졌지만 아르메니아 분리주의자들이 나고르노-카라바흐 방위군 무장 조직의 해체와 무장해제를 수용하면서 휴전 합의가 이뤄졌다.

역사적으로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는 민족 간 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양국이 구 소련에 병합된 이후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아르메니아계가 다수임에도 아제르바이잔의 자치주로 편입되면서 긴장이 커졌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지리상 아제르바이잔 영토 내에 있지만 12만 명에 달하는 아르메니아계 지역 주민들이 '아르차흐 공화국'이라는 국가를 세우고 아르메니아 정부의 지원하에 분리 독립을 요구해왔다. 특히 종교적으로도 아르메니아는 기독교계, 아제르바이잔은 이슬람계다.

구소련 해체 후 1991년에는 아제르바이잔 지역 내 아르메니아 주민들이 독립을 선언하자 전면전이 벌어져 약 3만 명이 사망했다. 2020년에도 약 6주 동안 전쟁이 발생해 7000여 명의 군인이 사망했다. 러시아가 중재해 평화협정이 체결됐고 평화유지군을 배치했지만 양측의 충돌은 지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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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나케르트 AFP=뉴스1) 장성희 기자 = 20일(현지시간) 아제르바이젠 스테파나케르트의 한 아파트가 아르메니아의 공세로 인해 파손된 모습이다. 앞서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젠은 분쟁 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두고 충돌했으나 러시아 평화유지군의 중재로 휴전에 합의했다. 2023.09.20/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의 위상이 약화된 점도 이 지역 분쟁이 심화한 원인으로 꼽힌다. 아르메니아는 러시아가 이끄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의 회원국으로 타국에 침공을 받으면 공동 방어하도록 돼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군인과 물자 보급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에서 러시아의 아르메니아에 대한 군사 지원이 어려워졌다.

반면 아제르바이잔의 군사력과 영향력은 커졌다. 아제르바이잔은 민족적 유대관계가 깊은 튀르키예로부터 군사적 지원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 또 중동을 대신해 아제르바이잔으로부터 대량의 석유를 수입하는 이스라엘과도 군사적 제휴를 맺고 있다. 탈러시아를 추진하는 유럽에게 있어서도 천연가스 대체 공급지로서 아제르바이잔의 중요성이 크게 높아졌다. 지난해 유럽은 전체 천연가스 수입의 약 17%를 아제르바이잔에서 수입했다.


분쟁 지속·심화 시 글로벌 에너지 가격까지 영향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분리주의 지역에 살고 있는 아르메니아인들을 평화적으로 재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수만 명의 아르메니아 주민들은 오랜 분쟁과 갈등을 겪어 온 아제르바이잔의 인종 청소를 우려해 피난을 떠나고 있다. 남코카서스 지역 전문가인 로랑 레일키안은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아르메니아인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 또는 망명뿐이다"며 "아르메니아인이 아르메니아에 대한 인종차별과 증오가 존재의 이유인 나라에서 사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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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쿠 AFP=뉴스1) 김예슬 기자 = 20일(현지시간)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한 주민이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서 국가의 공세를 지지하는 뜻으로 가게 앞에 국기를 걸고 있다. 23.09.20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조만간 튀르키예, 프랑스, 독일, EU의 중재 속에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 재통합을 위한 양국 정상 간 회담 및 협상이 진행될 예정이다.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자치지역 무장세력에게 무장을 해제하면 처벌하지 않겠다는 협상안을 제시했지만 자치세력은 포괄적인 안전 보장을 요구하고 있어 쟁점 사안에 대한 합의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아제르바이잔으로 재통합될 경우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수호하지 못한 아르메니아의 파시냔 총리는 정국 불안 속에 국민의 저항에 부딪칠 가능성이 높다. 또 평화 협상 결과에 따라 자치지역에서 폭동이나 국지적인 충돌 등 유혈사태 가능성도 제기된다. 평화 협상이 지체된 가운데 유혈사태나 아르메니아 주민들에 대한 인종 청소 등이 벌어질 경우 다시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정면으로 충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튀르키예나 러시아, 이란, 미국 등이 개입하면 주변국의 분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고, 특히 주요 산유국이자 천연가스 생산국인 아제르바이잔이 개입된 분쟁은 공급난에 빠진 국제 에너지 가격의 불안을 더욱 가중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