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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축복에서 재앙으로…미세한 조각이 부른 치명적 위협

[선데이 모닝 키플랫폼] 브랜드 혁신 스캐너 #17 - "미세 플라스틱 대응"

김상희 | 2023.02.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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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다 아체 AFP=뉴스1) 권진영 기자 = 28일(현지시간) 인토네시아 반다 아체의 한 폐기물 수집 현장에서 어린 아이들이 플라스틱 쓰레기를 가지고 놀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플라스틱은 축복이었다. 가벼우면서도 단단하고 다양한 형태로 제작 가능하며 전기·화학적으로도 높은 안정성을 지닌 게 가격도 저렴했다. 이런 특성으로 장난감, 가전제품, 자동차, 각종 생활용품, 주방용품 등 플라스틱이 사용 안 되는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특히 플라스틱은 수많은 의료 도구와 장비에도 사용되는 만큼 없다면 의료 서비스가 중단되는 치명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이처럼 플라스틱은 인류의 삶과 더 이상 떼려야 뗄 수 없는 물질이 됐다. 하지만 이런 플라스틱을 점차 재앙으로 보는 시각도 커지고 있다. 수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플라스틱이 환경에 유해하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려졌다. 빨대가 코 깊숙이 박혀 힘겨워하는 거북이, 음료 캔 묶음을 위한 플라스틱 링에 부리와 목이 낀 새, 뱃속 가득 플라스틱 쓰레기를 삼킨 채 죽은 고래 등 플라스틱이 생태계를 위협하는 모습들이 수없이 많이 목격됐다.

그럼에도 정작 인간은 플라스틱의 위험성에 무심한 편이었다. 쓰레기가 쌓이고 야생동물들이 고통받는 것을 보면서도 인간에게 직접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다 2004년 해양생태학자인 리처드 톰슨 폴리머스대학 교수의 연구팀이 영국 해변에서 아주 작은 조각의 플라스틱들을 발견하고 이를 미세 플라스틱이라고 부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단지 환경에 나빠 간접적으로 인류를 위협하는 게 아니라 직접 우리 몸속을 침투해 건강을 해치는 유해 물질이 됐기 때문이다.

톰슨 교수의 발표 이후 이어진 많은 연구를 통해 스페인, 영국, 호주 등 세계 각지의 해양에서 다량의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됐다. 심지어 심해와 극지방에서조차 발견되면서 심각성이 크게 부각됐다. BBC 다큐멘터리 '블루 플래닛2'를 비롯한 여러 미디어에서도 지속적으로 심각성을 경고하며 주요 환경 문제로 부상했다.



5mm도 안되는 작은 조각…질병 유발·전염병 전파 가능성 ↑


미세 플라스틱은 직경 5mm 미만의 플라스틱 조각과 입자를 가리킨다. 펠릿, 섬유, 비즈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화장품 등의 원료로 사용되는 처음부터 작은 입자인 1차 미세 플라스틱과 큰 플라스틱이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으로 쪼개지며 만들어지는 2차 미세 플라스틱으로 구분된다.

미세 플라스틱은 작은 물고기 등부터 섭취되기 시작해 먹이 사슬을 통해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최종적으로는 사람에게까지 전달돼 인체에서도 발견이 된다. 누르 하지마 모하메드 노르, 메렐 쿠이, 노엘 디펜스, 알버트 코엘만스가 2021년 발표한 '소아·성인의 미세 플라스틱 축적' 연구에 따르면 어린이가 하루에 약 500개의 입자를 섭취하는 것으로 확인됐고, 음식, 음료, 공기 공급원을 통한 섭취 기준으로 성인의 몸에 일생 동안 최대 5만 100개의 입자가 축적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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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뉴스1) 오현지 기자 = 15일 제주 함덕해수욕장에서 진행된 '플라스틱 없는 제주-우리가 버린 미세플라스틱 수거 캠페인'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채반을 이용해 플라스틱을 걸러내고 있다.2020.8.15/뉴스1
현재까지 연구된 결과에 따르면 미세 플라스틱이 인체에 들어오면 세포의 산화 스트레스 증가, DNA 손상, 염증 발생 등의 가능성을 높여 건강을 위협한다.

특히 연구가 이어지면서 플라스틱 입자 그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하나 둘 밝혀지고 있다. 미세 플라스틱 표면은 미생물, 박테리아 등이 잘 자라는 번식지로의 역할을 한다. 북해와 발트해에서 채취한 미세 플라스틱에서는 식중독을 일으키는 비브리오균이 붙어 있는 것이 확인됐다. 전염병 전달 매개체 역할을 할 가능성이 확인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생물학적인 오염 외에도 가소제, 중금속, 의약품 잔류물 등 각종 유해 화학 성분이 부착하기도 해 생태계에 독성학적 손상 위험을 증가시킨다.

더 큰 문제는 미세 플라스틱 문제가 불거진지 불과 10~20여 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만큼 장기적으로 인체나 생식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충분한 연구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제 사회, 부랴부랴 미세 플라스틱 저감 대책 마련


미세 플라스틱의 심각성을 인지한 국제 사회의 문제 해결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유엔환경총회(UNEA)는 2014년 제1회 총회에서 해양 쓰레기와 미세 플라스틱을 새로운 지구 환경 문제로 꼽은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해당 결의안은 미세 플라스틱 문제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요구했으며, 이를 통해 유엔환경계획(UNEP)이 2016년 '해양 플라스틱 파편과 미세 플라스틱: 행동을 고무하고 정책 변화를 이끄는 세계적인 교훈과 연구'라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이어진 수차례의 총회에서 국제 사회의 미세 플라스틱 문제 해결을 위한 결의안과 권고안이 제시됐다. 또 미세 플라스틱 문제를 연구하기 위한 전문가 그룹을 설치하기도 했다. 지난해 제5차 회의에서는 175개국 대표들이 2024년까지 플라스틱 오염에 대응하기 위한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제 플라스틱 조약에 대한 결의안을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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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화학청(ECHA)은 환경으로 방출되는 미세 플라스틱 제한을 유럽위원회에 제안했다. 제안서는 혼합물의 미세 플라스틱 농도가 0.01%를 초과할 수 없도록 해 20여 년에 걸쳐 50만 톤의 미세 플라스틱 방출을 막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구체적인 실행방안으로는 △미세 플라스틱 발생과 판매 제한 △공급자는 환경에 미세 플라스틱이 방출되지 않도록 사용 지침 또는 안전 데이터를 담은 라벨 부착 △산업 현장에서 사용되는 미세 플라스틱을 포함하는 물질과 혼합물에 대한 연례 보고서 발간 등이 포함됐다.

미국은 2015년 미세 플라스틱의 한 종류인 마이크로 비드를 함유한 화장품의 제조·포장·유통을 금지하는 '마이크로 비드 프리워터법'을 통과시켰다. 캐나다는 환경보호법을 개정해 플라스틱 제조 품목을 추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식료품 봉투, 빨대, 음료 홀더, 접시 등 일회용 플라스틱을 금지하는 규정을 발표했다.



커지는 사회적 책임 요구…기업들도 미세 플라스틱 문제 해결 나서


국제기구와 각국 정부 외에 ESG(환경, 사회적 가치, 지배 구조) 경영 부각, 사회적 책임 강화 요구 등에 따라 민간 기업도 미세 플라스틱 저감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세 플라스틱 제거와 관련해 가장 앞서 나가는 곳으로 꼽히는 비영리 환경 엔지니어링 단체 오션 클린업은 해양 정화 기술을 중심으로 미세 플라스틱 제거 기술을 개발한다.

다량의 페트병을 사용하며 주요 미세 플라스틱 발생원으로 꼽히는 코카콜라는 대학과 협력해 자체적으로 미세 플라스틱 문제를 연구하고 페트병 제조 시 재활용 플라스틱 비중을 높이는 공약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 네슬레, 월마트 등 다양한 글로벌 기업들이 플라스틱 재사용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이 밖에 영국 화학 기업 에이큐닷은 미세 플라스틱이 발생하지 않는 농업 자재를 개발하고, 정수기 기업 블루워터는 미세 플라스틱 제거 기능을 강화한 제품을 선보였다.

미세 플라스틱 제거 기술에는 미세 필터를 통한 여과, 흡착제를 통한 흡착, 자성을 띤 입자를 흡착제로 활용한 자기 분리법, 응고제·전하 등을 이용한 응고 처리, 미세 플라스틱을 더 작은 분자로 분해하는 화학적 산화 처리를 비롯해 일부 실험으로 입증된 미생물과 곤충 이용 생분해 방법 등 연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