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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는 한민족의 후예다"…재야사학자가 발견한 '해양 본능'

[선데이 모닝 키플랫폼] 인터뷰 - 이재일 전 한국씨티은행 부행장

조철희 | 2022.12.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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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자인 칼 포퍼는 과학의 발전은 과감한 추측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역사적 연구에도 다양한 증거에 기초한 상상력과 추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재야 사학자가 정통 사학자들이 할 수 없는 탐험적 가설을 수립하고, 이를 직접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확인해가는 과정은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합니다.



한국의 저명한 경영학자인 곽수근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재단법인 한국기업가정신 이사장)가 최근 출간된 역사기행서 <아시아 바다의 역사 기행>(펴낸곳 이서원)에 대해 남긴 서평이다. 곽 교수의 설명처럼 이 책은 알려진 기록들 바깥에 있는 상상의 역사를 탐험하는 매우 흥미롭고 도전적인 역사책이자 기행문이다. 상상이라고 해서 무조건 사실이 아닌 건 아니다. 그 상상이 실제적 사실일 수 있음을 뒷받침하는 현장의 증거와 추론의 논리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 바다의 역사 기행>은 7세기에서 17세기에 걸친 우리나라, 중국, 일본을 무대로 한 아시아 전역의 해양 역사 이야기다. △중국 동해안에 대륙백제가 있었다 △고구려의 후예로 산둥반도에 제나라를 세운 이정기는 황해를 지배했다 △한반도를 괴롭혔던 왜구는 대륙백제의 후예들과 고구려의 유민들이다 △왜구는 소규모 해적이 아닌 거대한 해상세력이다 △중국 화교들도 이 왜구의 후예들이다. 이런 추측, 가설, 상상이 결국 말하는 것은 중세 아시아에서 중요했던 해상세력이 우리의 선조들이고, 그 후손들인 우리는 지금 해양 패권의 지정학 시대를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DNA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인 이재일 전 한국씨티은행 부행장은 머니투데이 <선데이 모닝 키플랫폼>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한류가 전세계에 퍼져 있는 것만 봐도 우리의 해양적인 능력을 실감할 수 있다"며 "중국과 러시아 등 대륙세력에 눌려 북쪽이 막혀 있던 우리는 사실상 섬이었기에 영국이 활로를 찾기 위해 바다로 뻗어나갔던 것처럼 우리도 그럴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시아 중세 역사에서 중요했던 해양세력이 우리 민족이었다는 역사적 장점을 찾아내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며 "그런 역사적 장점들은 이미 실현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해안세력의 뿌리가 중국 대륙에 남겨진 대륙백제의 후예들과 고구려 유민, 그리고 그들을 이어받은 신라인과 중국인들이라고 가정하면서 동남아시아인들도 우리 민족과 관련 깊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 민족은 한반도에만 살지 않고 중국 동해안 등 아시아 전역에 걸쳐 살았다"며 "그런 후예들이 지금 동남아에 살고 있는 화교들이 아닌가 추정된다"고 말했다. 특히 일본의 역사는 우리 민족이 아니었다면 설명할 길이 없다고 했다.

이 전 부행장은 금융기관에서 30년을 일한 금융맨에서 재야 사학자로 변신했다. 일본에서 5년 동안 근무하면서 고구려, 신라 등 기존엔 알지 못했던 우리 역사의 흔적들을 보게 되면서 역사 연구에 빠져들었다. 역사를 보는 눈을 새롭게 뜨려했고, 열심히 발로 뛰었고, 그래서 우리가 잘 몰랐던 역사를 다시 살려내고자 했으며 죽어 있는 역사가 아닌 살아 있는 역사를 전하려 애쓰고 있다.

곽 교수는 "정통 국사학자들이 우리 역사를 한반도 중심으로 보는 것과 달리 저자는 한민족의 활동 무대였던 일본과 중국으로 시야를 넓혀 역사를 다시 돌아보고 있다"며 "일본에 머무는 동안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넘어간 도래인들의 흔적들을 발로 찾아다녔고, 중국에서도 한민족의 활동 지역들을 찾아다니면서 우리가 잊고 있는 역사를 다시 살려내고 있다"고 격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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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전 한국씨티은행 부행장 출간 인터뷰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 <아시아 바다의 역사 기행>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것이 '왜구'인 것 같습니다. 기존까지 알려진 것과는 꽤 다르게 왜구를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저자께서 연구하신 왜구의 개념을 설명해 주십쇼.

▶사실 우리에게 왜구는 일본제국주의와 함께 예민한 역사 감성을 건드리는 말이죠. 왜구의 침입은 삼국시대부터 빈번했고 피해도 적지 않았습니다. 왜구가 가장 심했던 시기는 고려말, 조선초였습니다. 왜구는 '왜가 도둑질한다'는 뜻인데 고려말 이래 약탈 행위가 잦아지면서 왜인들의 해적 행위를 표현하는 명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한반도와 일본, 멀리는 동남아시아의 주변 바다에서 활동하던 해양세력을 초기 왜구, 전기 왜구, 후기 왜구로 구분해 보고 있습니다. 13세기 때 초기 왜구는 일본 규슈 일대의 일본인들이고, 근거지는 쓰시마 등이었습니다.

고려시대 1350년부터 본격적으로 침입하기 시작한 전기 왜구는 동해, 서해, 남해 연안뿐만 아니라 내륙까지 침범했습니다. 저는 이들이 소규모 일본 왜구가 아니라 중국 명나라와 맞서던 세력의 잔당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 해안세력의 뿌리가 중국 대륙에 남겨진 대륙백제의 후예들과 고구려 유민, 그리고 그들을 이어받은 신라인과 중국인들이라는 가정을 하고 있습니다. 백제사를 연구해 온 재야사학자 김성호 박사의 가설을 따른 것입니다.

후기 왜구의 대부분은 밀무역을 하는 중국인들이었습니다. 이 시기 명나라는 해금정책을 폈기 때문에 밀무역을 하려는 중국인들은 일
본인 흉내를 내면서 왜구 노릇을 했습니다. 이들을 '가왜'(假倭)라고도 불렀습니다. 그들 중 지도자가 생겼는데 바로 왕직입니다. 그는 중국 주산군도에 본거지를 만들고 일본에도 2차 본거지를 세웠습니다. 중국 대륙을 공격해 명나라 관군을 패퇴시킨 적도 있습니다.

- 왜구를 단순히 해적 무리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상당한 세력이었다는 것이군요. 그렇다면 해양의 무시 못할 세력으로서의 왜구는 고려와 조선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 같습니다.

▶태조 이성계도 결국 해양 관리를 잘해서 조선 건국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성계는 왜구들을 싸워서도 이기고, 설득해서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14세기엔 그런 왜구의 침략이 잦았습니다. 그런데 그 왜구는 단순히 노략질만 하려는 해적이 아니었습니다. 규모가 상당했다는 기록들을 볼 수 있습니다. 육지로도 상륙해 충청도, 전라도를 헤집고 다녔습니다.

왜구에 시달리던 명나라는 바다의 문을 걸어잠그는 해금(海禁) 정책을 폈습니다. 사실 조선은 해금이 필요가 없었는데 명나라 법률인 대명률(大明律)을 그대로 따랐기에 똑같이 바다를 막았습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중국에 갈 때 배를 타지 않고 반드시 내륙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해금이 결국 훗날 중국에도, 조선에도 패망의 길이 됐습니다.

- 그러면 조선과 중국에서 막힌 왜구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일본과 동남아시아로 갔습니다. 전기 왜구, 후기 왜구 모두 중국 왜구인데, 이들의 본거지는 중국이지만 2차 본거지는 일본에 만들어집니다. 전국시대가 지속되던 일본은 전란으로 바다를 통제하지 못해 중국인들이 잘 넘어갔습니다.

중국 왜구들은 동남아로도 갔습니다. 앞서 중국 왜구의 뿌리는 대륙백제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민족은 한반도에만 살지 않고 아시아 전역에 걸쳐 살았습니다. 중국 동해안에도 살았습니다. 그런 후예들이 지금 동남아에 살고 있는 화교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화교의 뿌리가 우리 민족과 연결돼 있을지 모른다는 것은 김성호 박사의 가설이기도 한데, 저도 그것을 증명해보려고 굉장히 노력을 했습니다. 일례로 1603년 필리핀 마닐라 화교 학살 사건, 1740년·1998년 인도네시아 화교 학살 사건 때 중국 본토 정부는 화교 보호를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화교를 자국민으로 취급하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이이제이'(以夷制夷, 오랑캐로 오랑캐를 무찌름)의 대상으로 보는 태도였습니다.

비교적 최근 사건인 1998년 인도네시아 화교 학살 사건 때, 해외 화교들은 중국 정부가 적극 나설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장쩌민 국가주석은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사건은 인도네시아 내정이므로 중국 정부는 간섭하지 말고 중국 언론도 보도하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 반면 화교 국가인 대만은 5대의 군용 수송기가 명령을 대기했고, 대만 해군은 인도네시아 발리섬 수역에서 화교들을 귀국시킬 준비를 했습니다. 싱가포르는 선박을 동원해 화교의 탈출을 도와줬습니다. 화교는 그러나 중국 정부로부턴 관심이나 보호 밖에 방치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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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대마도정벌 관련 그림 /사진=세종대왕기념사업회

- 중국은 현재도 지나친 코로나19 통제 정책으로 집단 반발과 시위가 일어나 정부가 급격히 태도를 바꾸는 등 어려운 시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앞서 명나라의 해금 정책을 얘기했었는데, 영국은 해적을 이용해서 성공했지만 중국은 해적을 물리쳐서 망한 것입니다. 한한령(限韓令)도 해금과 똑같은 것입니다. 옛날 버릇을 못고치는 것이죠.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중국은 지난 20~30년 동안 개방을 통해 발전했습니다. 그런데 과거로 돌아가는 행동들을 자주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면 중국인들이 즐길거리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것이 중국 집권층의 정치적 위기를 낳을 수 있다고 봅니다. 코로나19에 대해서도 상상치 못할 강경하고 폐쇄적인 조치도 마찬가지입니다.

- 지금까지 하신 말씀을 정리하면 우리 민족은 다수 일본인과 일부 동남아시아인들의 뿌리와 연관이 있고, 아시아 중세 역사에서 중요했던 해양세력도 우리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한류가 전세계에 퍼져 있는 것만 봐도 우리의 해양적인 능력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능력을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반도는 중국·러시아의 대륙세력과 미국이라는 해양세력의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섬'이 돼버렸습니다. 북쪽으로 끊겨있기 때문에 섬에 다름없지 않습니까. 섬은 활로를 해양에서 찾아야만 합니다. 영국이 바다로 뻗어나갔던 것처럼 우리도 그럴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우리의 원초적인 이런 능력은 사실 조선시대에 자꾸 잊혀지려고 시작했습니다. 역사는 역사가가 기록한 것입니다. 역사가는 자신의 이념에 맞춰 역사라는 기록을 씁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조선시대에 쓰여진 역사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역사를 썼을까요. 사대주의에 따라 썼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중국보다 나은 점들은 역사에서 다 없어져야 했습니다.

저는 역사적인 사실(史實)과 실제적인 사실(事實)이 있다고 봅니다. 역사에서 대중들이 믿고 있는 것은 대부분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실제적인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역사적인 사실은 누군가 만든 것입니다. 제 책은 중국적 관점에서 만들어진 역사적 사실로 쓰여지지 않았습니다. 제 책이 조금 자랑스러운 것은 역사 속에서 우리의 장점들을 많이 찾아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역사적 장점들은 지금 이미 실현되고 있습니다.

- 현재는 해양 패권의 지정학 시대인데, 그렇다면 우리로선 정말 반갑고 절실한 역사적 장점·능력인 것 같습니다.

▶우리 민족은 30%가 남방계이기 때문에 아마 그 이전부터일지도 모르지만 역사 기록상으론 백제시대를 시작으로 신라를 거쳐 고려 초기까지 아시아 해양세력의 주역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출발과 함께 대륙세력 명나라에 적극적으로 합류했고, 결과적으로 우리보다 먼저 해양세력의 영향을 받은 일본에 의해 치욕적인 지배를 받게 됩니다. 이후 필사적인 경제 발전 노력과 더불어 해양세력의 최종 결집체인 미국과의 동맹으로 우리는 역사에 유례가 없는 번영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중국(대륙세력)과 미국(해양세력) 사이의 갈등도 체감하고 있죠.

네덜란드계 미국 지정학자 니콜라스 스파이크먼은 <평화의 지정학>에서 세계는 '하트랜드'(The Heartland, 대륙세력)와 '림랜드'(The Rimland, 연안지역·해양세력)의 갈등인데, 지난 500년의 역사는 해양세력의 승리로 끝났다고 했습니다. 스파이크먼은 "연안 지역을 차지하는 자가 유라시아를 차지하고, 유라시아를 차지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미국의 오래된 지정학 전략이기도 합니다. 일본, 한국,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호주까지 절대로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 하지 않습니까.

최근 미국은 자유진영의 연대를 강조하고, 중국과 러시아는 더욱 권위주의적으로 치닫는 것 같습니다. 이들 사이에서 지혜롭게 생존을 모색하는 것이 우리의 질긴 숙제인데, 그렇다면 이들의 속성을 잘 알고 있는 것이 우선 중요합니다. 해양세력의 씨파워(Sea Power)와 대륙세력의 랜드파워(Land Power)는 차이가 큽니다. 씨파워는 민주주의, 자유주의, 개인주의인 반면 랜드파워는 권위주의, 사회주의, 집단주의입니다. 전자는 유동적, 혁신적이지만 후자는 부동적, 보수적입니다.

-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을, 한국과학원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신 후 한국씨티은행, 일본씨티은행, SC제일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30년을 일하셨습니다. 금융맨이 재야 사학자로 변신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일본에서 5년 동안 근무하면서 고구려, 신라 유적을 굉장히 많이 보게 됐습니다. 우리 교과서엔 나오지 않는 것들이었습니다. 우리 역사의 흔적들을 찾기 위해 일본 전역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렇게 찾아본 것을 한국에서 확인과 비교를 해봐야 하기 때문에 답사를 많이 다녔습니다. 현장을 다니면 다닐수록 역사에 더욱 깊게 빠져들었습니다.

제 책이 서사적인 역사책이라기보다 기행문에 가까운 것은 현장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현장에 가보면 전혀 다르게 느껴집니다. 그 느낌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죽어 있는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는 역사를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제 책을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여행 가이드로 활용하셔도 좋을 겁니다. 역사를 알면서 여행을 다니면 매우 재미있습니다.

이번 책은 원래 역사소설을 준비하기 위한 배경 자료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1636년 후금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명의 멸망과 청의 중국 지배가 시작되는 것을 보고 조선으로 돌아와 1644년 안타깝게 죽은 조선의 '소현세자'입니다. 선진문물과 넓은 세상에 눈을 뜬 소현세자가 죽지 않고 국외로 나가서 조선을 대표해 아시아의 바닷길을 호령하는 해왕으로 활약하는 내용의 소설입니다. 만약 소현세자가 오키나와 서쪽 야에야마 제도의 어디쯤에 자리를 잡고 활약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의 배경으로, 1600년대 동아시아 해상세력, 즉 중국해적과 일본해적 그리고 이제 막 동양의 바다를 누비기 시작한 서양세력에 대해 연구한 것입니다.

이번 책은 중세사를 다뤘지만, 사실 저는 고대사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한일 고대사를 다룬 <해밑섬을 걷다>라는 책이 곧 나옵니다. 일본(日本)의 '日'은 '해'이고, '本'은 '밑'이라는 뜻입니다. 해밑섬은 일본을 일컫는 순우리말입니다. 일본이 우리로부터 시작된 역사를 이야기한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