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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에게 죽음을…시위 뒤 숨겨진 경제난·세속화 열망

[선데이 모닝 키플랫폼] 글로벌 스캐너 #12 - "이란 히잡 시위"

최성근 김상희 | 2022.10.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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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로이터=뉴스1) 김성식 기자 = 2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에서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 사망에 분노한 시민들이 그의 생전 사진을 몸에 두르고 '여성 해방'이란 문구를 손에 든 채 이란 정부를 향해 규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미니는 지난달 13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도덕 경찰에 구속된 뒤 의문사 했다. 이후 이란 각지에선 반정부 시위가 분출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른바 '히잡(여성의 두발을 가리는 복식) 미착용 의문사' 사건으로 촉발된 이란 반정부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다.

3주째 이어지고 있는 시위는 청년과 여성들을 중심으로 들불처럼 번지는 가운데 이란 정부의 강경 대응으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최근 CNN은 이란 시위가 격화하면서 이란 체제와 정권이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놓여 있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 각지에서 히잡 거부 시위를 지지하는 연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으며 이란 내부적 문제를 넘어 미국과 이란 간 갈등마저 고조되는 양상이다.

<선데이 모닝 키플랫폼>은 날로 격화하는 이란 히잡 거부 시위의 배경과 향후 이란 국내외 정세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살펴봤다.



반정부 시위로 격화한 히잡 거부 시위



지난 9월 13일 이란에서 마흐샤 아미니라는 여학생이 차량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여성은 머리카락을 히잡으로 가려야 한다는 이슬람 율법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아미니가 갑자기 코마 상태에 빠져 병원에 이송된 후 사흘 만에 사망한다.

사건 직후 아흐마드 바히디 이란 내무부 장관은 아미니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수 목격자들은 경찰이 구치소로 연행하는 과정에서 아미니를 폭행해 의식불명 상태에 빠뜨렸다고 증언했다. 유엔인권고등판무관도 체포 당시 경찰이 그의 머리를 지휘봉으로 가격하고 차에 머리를 박았다는 보고가 있었음을 공개했다.

아미니의 유족들과 이란 인권단체는 경찰의 구타와 폭행을 사망 원인으로 지목하며 진상 규명을 강력히 요구했고 이어 시위가 시작됐다. 지난 17일 수도 테헤란을 시작으로 시위는 빠르게 번졌고 특히 여성들은 히잡을 벗어 불태우거나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영상을 찍어 SNS에 공유하면서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이란 당국은 시위를 '적들의 음모'라며 경찰력을 동원해 실탄과 고무탄, 최루탄 등을 사용한 무력 진압에 나섰다. 경찰의 강경 진압에도 불구하고 시위는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와 함께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격화됐고 사상자도 속출했다. 이란 전역에서 현재까지 시위대 150여 명이 사망하고 체포 구금된 숫자만 20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진다.



시위 배경은 경제난, 정부 대응, 그리고 세속화 열망


국립외교원은 이란의 히잡 거부 시위 발생 배경으로 세 가지를 지적한다.

첫째는 경제난 심화와 무능한 정부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핵합의 탈퇴 이후 고강도 경제 제재를 받으면서 이란 경제는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주요 수입원인 석유 거래가 막히고 각종 금융 제재가 이어지면서 경제난이 심화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이란의 1인당 GDP는 2011년 7781달러에서 2020년 2282달러로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민심이 악화했고 최근 환율과 물가마저 급격하게 치솟으면서 서민들의 고통이 가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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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3일(현지시간) ‘히잡 의문사’ 반정부 시위 확산 속 테헤란에서 열린 군 행사에 참석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두 번째는 이란 정부의 보수 강경정책이다. 전임 로하니 대통령은 유연한 성격의 중도적인 리더십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취임한 라이시 대통령은 이슬람 신학자 출신으로 이슬람 사법부 경력의 골수 이슬람 보수세력 출신이다.

그는 지속된 경제난으로 이란 사회의 불만이 고조되자 강력한 이슬람 율법으로 통제하고자 했다. 특히 '신의 대리자'라고도 불리는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건강 이상설이 제기되면서 이슬람 율법주의를 강조했고 그 일환으로 여성들의 복식을 강력하게 단속했다. 라이시 정부는 머리카락 한 올의 노출도 용납하지 않겠다면서 지난 7월 히잡과 순결 칙령까지 반포했다.

세 번째는 좌절과 박탈감에서 고취된 국민들의 저항의식이다. 그간 이란 청년과 여성들은 이슬람 체제에 순응적이었으며 저항의 동력이 생겨날 동기도 뚜렷하게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세속화에 대한 동경과 열망이 내재된 가운데 핵문제로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커졌다. 2015년 미국과의 핵합의가 타결되면서 잠시나마 이란 국민들의 개방과 발전의 분위기를 맛보았고 자유와 세속화에 대한 기대는 증폭됐다.

그러나 수년 만에 그러한 기대는 물거품이 됐고 정부가 오히려 강경한 이슬람 복고주의로 회귀하면서 자유와 세속화를 기대했던 청년층과 여성들 사이에 저항의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란 시위 향방과 국제 사회에 미칠 영향은?



히잡 거부 시위는 3주가 지났음에도 오히려 격화하고 있으며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로 확대됐다.

이번 시위가 지난 '아랍의 봄'처럼 정권을 전복시키는 정치 혁명으로까지 이어질지 아직 예단하기는 힘들다. 다만 청년층과 여성 심지어 10대 청소년들까지 시위에 동참하는 가운데 주변 이라크와 터키, 유럽은 물론 세계 150여 개 주요 도시에서 연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향후 이란 정부의 전향적인 조치가 없다면 반정부 시위가 한층 격화돼 정권 퇴진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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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로이터=뉴스1) 김성식 기자 = 24일(현지시간) 그리스 아테네에서 한 여성이 마흐사 아미니(22)의 죽음에 항의하며 스카프에 불을 붙이고 있다. 아미니는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현지 도덕경찰에 구금된 뒤 의문사했다. ⓒ 로이터=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소수민족과 국가 간 갈등도 고조되는 양상이다. 사망한 아미니가 이란 내 소수민족인 쿠르드족 출신인 탓에 수면 아래 있던 소수민족 문제까지 부상했다. 아미니 사망 이후 쿠르드족이 많이 살고 있는 서부지역에서 시위가 격렬해졌다.

이에 지난 28일 이란 혁명 수비대는 배후에 쿠르드족 분리독립 세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탄도 미사일과 드론을 이용해 이란 서부 지역과 접한 이라크 동부 술라이마니야주와 아르빌주 내 쿠르드족 자치 지역을 공격했다. 이 공격으로 민간인 13명이 사망하고 5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라크 외교부는 주권을 침해한 행위라며 이란 정부를 강하게 비난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유엔 헌장에 명시된 주권과 영토 보전의 원칙을 노골적으로 무시한 것"이라며 비판했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도 심화한다.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자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의 진보를 막기 위해 히잡 거부 시위를 조장하고 있다며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자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기본적 존엄과 평등권을 요구하는 평화로운 이란 시위대에 대한 폭력적인 탄압이 강화되는 데 대해 깊이 우려한다"고 밝히며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 조치를 예고했다.

히잡 거부 시위로 미국과 이란 양국 간 갈등이 한층 고조되면서 현재 핵심 쟁점들을 두고 협상 중에 있는 이란 핵 합의는 타결이 불투명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