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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보다 못한 일본 정치, '잃어버린 30년'의 원인

[선데이 모닝 키플랫폼] 인터뷰 - 김현철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장 #2.일본정치

조철희 | 2022.08.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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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0일 (현지시간) 도쿄 총리 관저에서 새 내각 각료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민'(國民)이라는 것은 앞에서도 말한 것과 같은, 군무과 주변에 들락날락거리는 우익 패거리들이며 또한 그 배경을 이루고 있는 재향군인, 기타 지방의 지도층이다. 군부는 흔히 우익이나 보도기관을 사용하여 그런 계층에 배외주의나 열광적인 천황주의를 선동했으며, 그렇게 타올라간 '여론'에 의해 거꾸로 구속받아 사태를 점점 더 위기로까지 끌고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전후(戰後) 일본 최고의 정치사상학자인 마루야마 마사오가 1949년에 쓴 '군국지배자의 정신형태'라는 글에서 군국주의 시절 일본 정치의 모순적 단면을 지적한 부분이다. 매우 오래 전의 모습이지만 갈수록 우경화 되고 있는 지금의 일본 정치·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2012년 아베 신조가 총리에 오르면서 일본은 우경화의 길로 내달렸다. 8년을 장기집권한 아베 전 총리가 지난 7월 피격 사망하자 일본의 우경화는 더 심해졌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정치를 외면한다. 선거 투표율은 50% 내외이고, 대부분 노년층이 투표한다. 집권당인 자민당은 그들을 중심으로 '국민'을 바라본다. 노년층의 오래된 사상과 이념, 옛날 군국주의의 추억이 '여론'이 되고, 정치는 이 여론에 올라타 더더욱 우경화 되는 것이 오늘날의 일본이다.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30년'에 빠진 것도 정치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특히 일본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실상 '1당 독재'인 자민당의 독주. 자민당은 1950년대부터 매우 일부의 시기를 제외하고는 계속 집권했다. 부정부패와 파벌문제에도 자민당은 독주했고, 일본을 이끌어갈 총리는 정당간 치열한 경쟁과 국민의 선택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민당 내부 파벌의 권력투쟁으로 결정됐다.

지난해 10월 일본의 100번째 총리로 등극한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자민당 총재 선거 직전 여론조사에서 경쟁자인 고노 다로 당시 행정개혁담당상에게 국민 지지율이 무려 30% 가까이 뒤졌다. 하지만 의원들의 몰표로 결국 총리가 됐는데, 일본 정치가 민심과 괴리된 결과를 낳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내 최고의 일본전문가인 김현철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장은 일본 정치의 문제점에 대해 "민주국가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가장 큰 원동력은 정권교체인데 자민당이 60여년간 장기집권한 일본은 그런 거버넌스와 메커니즘이 거세됐다"며 "정치권이 국민·기업의 요구를 수용하고 개혁에 나서질 못해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이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향후 일본 정치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기시다 총리의 역할이 주목된다고 말했다. 1년 정도 안팎에 갈리는 총리가 부지기수인 일본 정치권에서 역대 최장수 총리인 아베 전 총리는 사망 전까지 상왕(上王)의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상왕은 떠났고, 그의 그늘 아래 있던 기시다 총리는 이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볼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

<선데이 모닝 키플랫폼>은 지난주 김 소장이 일본 경제의 현황과 전망, 한국 경제와의 비교점 등을 이야기한 '일본경제편' 인터뷰 <'잃어버린 30년' 일본, '잃어버렸다'는 비관이 결정적 실패 이유> 이어 이번주에는 일본 정치의 문제점과 한국이 반면교사로 삼을 점 등을 짚어본 '일본정치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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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서울대 일본연구소장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日 실패의 원인, 정치의 실패


· 일본 정치는 무엇이 가장 큰 문제인가요?

▶사실 우리도 지금 정치가 엉망이라고 하지만 일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낫다고 봅니다. 일본은 60여년간 자민당 1당 독재였죠. 전세계 민주국가들 중 유일한 1당 독재입니다.

일본을 미화하는 학자, 특히 일본 장학금을 받은 학자들은 자민당에 계파가 다양하게 있어서 집권 계파가 바뀌면 정권교체와 같은 순환이 있다고 억지로 끼워맞추는 주장을 합니다.

민주국가에서 변화를 만들어 내는 가장 큰 원동력은 정권교체입니다. 정권교체는 교체 전까지 간과되거나 무시됐던 국민들의 요구를 새롭게 국정에 반영해 새로운 방향 전환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또 그게 잘못되면 또다른 정권교체로 평가받고 새로운 변화로 움직여 가는 것입니다. 이런 흐름이 민주국가의 가장 중요한 거버넌스입니다.

일본은 이 메커니즘이 거세된 나라입니다. 국민들과 기업들의 변화 요구가 정치권에 제대로 투영되지 않고, 정치권이 개혁적인 실천을 하지 못해 일본은 실패했던 겁니다.

일본의 지난 30년을 실패와 충격의 30년이라고 규정한 요시미 šœ야 도쿄대학교 교수도 가장 중요한 실패 원인으로 꼽은 게 일본 정치의 실패입니다. 정치의 실패가 경제 등 다른 실패의 근본 원인이라고 했습니다. 민주국가로서의 정치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다른 실패를 계속 낳거나 지속시킨 것입니다.

· 일본은 시민사회나 경제계가 정치권을 견제하지 않습니까?

▶일본은 전후 평화헌법 아래서 전쟁과 군대를 포기했기 때문에 경제발전이 유일한 국시였습니다. 기업이 정치권에 적극적으로 의견과 요구를 개진했고, 정치인들이 기업의 입장을 살펴 주면서 경제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이 정치권과 소통 역할을 했었죠.

그런데 잃어버린 30년 동안 정치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기업들은 등을 돌렸습니다. 각자도생으로 생존하는 길을 택하기도 했습니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에게 투표를 하는 집단만 보게 됐습니다. 일본은 유권자들이 정치에 대한 기대가 없어 선거 투표율이 50% 정도 밖에 안됩니다. 그것도 대부분 노년층입니다. 기업이나 젊은층의 의견은 정치권에 반영되지 않고 노인들의 의견만 반영되는 실버 데모크라시(Silver Democracy)가 심각합니다. 그래서 낡은 사상과 이념, 옛날 군국주의의 추억이 부상하며 일본 정치가 우경화된 것입니다.

· 아베 신조 전 총리 시절에는 우경화가 정말 심각했던 것 같습니다. 아베노믹스로 경제를 살리려고 애썼던 것 같아도 실상은 자국 기업들이 반대하는데 한국에 수출보복을 하는 등 경제보다 정치를 훨씬 더 우선시한 것 같은데요.

▶자민당은 예전엔 관료 조직과 역할분담을 하고 합의를 하면서 정책을 폈는데 아베 때는 '관저(총리관저) 주도'라는 명목하에 강력한 그립으로 정치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의 의견이 정치권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자민당과 일본 기업들이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 이후 60년 동안 유지했던 불문율 원칙이 경제 문제를 정치 문제와 분리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업들 입장에서 '정치는 당신들 뜻대로 하되, 경제만은 건들지 말라'는 것이었고, 이 원칙이 꾸준히 지켜져 왔습니다.

특정 국가와 정치적으로 관계가 좋든 나쁘든 경제적인 교류는 항상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게 불문율이었는데 아베는 수출보복을 하면서 이 원칙을 깼습니다.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경제를 이용했죠.

일본 재계에선 아베 등 몇몇 정치인들에 의해 경제가 정치에 수단화되는 것을 보고 큰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미일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대만 침공시 일본의 개입 이야기가 나오자 일본 재계가 노골적으로 반발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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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서 이용객들이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피습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2022.07.08.



上王이 떠난 후


· 아베 전 총리가 2년 전 스스로 총리직에서 물러난 것도 의외였고, 최근에 피격 사망한 것은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는 물론 기시다 후미오 현 총리도 아베의 그늘 아래 있었는데, 아베의 사망 이후 일본 정치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십니까?

▶기시다의 자민당 내 파벌은 현재 아베파나 아소파에 비해서는 매우 작은 파벌이지만 자민당 본류를 따져 보면 아베파와 아소파가 신흥파벌이고 기시다파가 주류파벌이었습니다. 따라서 과거의 영광을 잘 알고 있는 기시다는 신흥파벌들과는 다른 전통적인, 역사성이 있는 정책을 실현하고 싶은 의지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아베파와 아소파가 워낙 득세를 했고, 기시다파는 소수파여서 타협을 하며 정치를 했지만 이제 상왕(上王) 아베가 없는 가운데, 게다가 참의원 선거도 압승한 상황에서, 기시다는 자신이 원하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좋은 환경에 있습니다. 다만 아직까지는 아베를 추모하는 애도정국이고, 우경화가 좀더 심화된 상황이라 숨고르기를 하겠지만 결국 기시다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전환해 나가고자 할 것입니다.

예컨대 기시다는 대(對) 중국 관계를 중시합니다. 아베는 미국에 편승해 중국을 적대시하는 정책을 취했지만 기시다파의 전통적인 스탠스는 미국은 기본이고 중국과도 잘 지내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자민당 주류파벌의 정책이었기 때문에 기존의 반중노선을 친중까지는 아니더라도 반중이 아닌 쪽으로 전환하려 할 것입니다.

· 기시다 총리는 아베의 그늘 아래에서는 아베노믹스를 계승해야 했지만 이제는 환경이 달라졌습니다. 아베노믹스는 사실 큰 부담만 남겨 놨고, 아베가 없는 상황에서 기시다 총리는 자신이 뜻하는 대로 경제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베노믹스는 지나치게 친기업 정책이었죠. 양적완화와 적극적 재정정책 등으로 기업들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기업들은 투자를 하지 않았고, 임금도 동결하면서 비정규직을 늘렸습니다. 중소기업까지의 낙수효과는 없었고, 가계의 소득도 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코로나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글로벌 인플레이션 등이 발생해 가계와 중소기업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기시다는 아베노믹스의 폐해와 후유증을 해소하기 위해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핵심으로 하는 '새로운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경제정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친서민·친가계적이고, 복지를 강화하는 정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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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5일(현지시간) 도쿄에서 열린 기업인 신년 하례회에서 사쿠라다 켄고 경제 동우회 대표, 미무라 아키오 상공회의소 회장, 토쿠라 마사카즈 경단련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연설을 하고 있다. (C) AFP=뉴스1



한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 저출생·고령화, 경제 추이 등을 보면 한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20년을 뒤따를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는데.

▶우리 경제도 일본처럼 저성장 이후에 제로성장, 마이너스성장으로 간다는 건 잘못된 분석입니다. '헬조선'과 같은 말이나 젊은세대가 부모세대보다 처음으로 가난해질 것이라는 전망은 지나친 비관론입니다.

우리는 일본처럼 되진 않을 겁니다. 우리 국민들은 다르기 때문이죠. 새로운 세대들이 나타나고 있고, 우리나라의 새로움과 다양성은 어떨 때는 혼란스러울 정도에요. 한국 사람들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봅니다. 위기 때도 긍정을 잃지 않는 마인드가 있죠. 한국은 도전정신과 다이나믹이 넘치는 나라입니다.

· 부동산이나 가계부채 등 한국 경제에 과거 일본과 같은 버블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단 버블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일본은 정치인들의 지나친 친미(親美), 관료조직의 잘못된 경제운용, 일부 국민들의 지나친 탐욕 때문에 버블이 발생했죠. 한국도 부동산, 가계부채, 가상자산 문제 등으로 버블 가능성이 일부 있지만 정말로 버블이 되지는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 만약 버블이 만들어지더라도 일본처럼 경착륙시켜서는 안됩니다. 일본은 한번에 버블이 터져 경제가 무너졌거든요.

그리고 지금 인플레이션을 걱정하지만 사실 인플레이션 뒤에 찾아올 경제침체, 디플레이션을 더 걱정해야 합니다. 디플레이션의 스파이럴(악순환)에 빠진 게 지난 30년의 일본 경제입니다. 정부가 제로금리, 양적완화와 같은 교과서에도 없는 극약처방을 하면서 천문학적 규모의 돈을 퍼부었지만 결국 국가부채만 1경원이 쌓였습니다.

일본은 또 기업과 가계의 선순환이 맞물리지 않은 게 문제입니다. 혁신을 통해 이익을 만든 기업들, 다음 혁신을 위해 투자한 기업들은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업의 선순환만 강조됐지 소득이 증대하고 소비를 늘리는 가계의 선순환은 강조되지 않았습니다.

· 끝으로 우리가 일본의 실패로부터 반면교사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여쭙니다.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이 된 것은 성장경제 다음에 성숙경제가 온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버블붕괴 이후 전국민의 집단적인 비관론 속에서 제로성장, 마이너스성장으로 갈 것이라고 믿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잃어버렸다고 한 지난 30년 동안 사실 0.7% 성장했습니다. 성장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일본도 최근에야 드디어 이를 깨닫고 성숙경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일본이 지녔던 것과 같은 비관론이 없지 않습니다. 지금의 저성장이 앞으로의 제로성장과 마이너스성장의 전조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과도한 비관론에 빠지지 말고 미래를 정확하게 내다봐야 합니다. 성장경제에 이은 저성장 뒤에 제로성장이나 마이너스성장이 오는 게 아니라 저성장을 통해 성숙경제로 진입하는 것입니다.

일본은 30년이 지나 땅을 치고 후회하며 깨달은 성숙경제를 받아들이면 우리는 분명 일본과 다를 길을 갈 것입니다. 일본과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고, 헤매지 않으면 우리는 2%대 성장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성숙경제는 1~2% 성장하는 것입니다. 미국, 독일 등 서구의 선진국들이 다 갔던 길입니다.

일본은 버블붕괴 이후 2% 안팎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해도 '잃어버렸다'고만 여겼습니다. 하지만 선진국 경제 규모에서 2% 성장은 상당한 성장입니다. 우리가 지금 1인당 국민소득 3만5000달러인데 2% 성장을 지속하면 36년 뒤에 소득 7만달러가 됩니다. 선진국의 저성장은 나쁜 성장이 아닙니다.

다 자란 성인이 키를 더 키우기 위해 성장호르몬을 맞고 갑자기 몇 센티 더 컸다면 아마 결국 몸이 망가질 것입니다. 국가경제도 마찬가집니다. 비정상적인 수단으로 경제가 고성장할 수도 없지만 그렇게 한 성장이야말로 나쁜 성장입니다. 고성장에 대한 미련 대신 질적 향상, 삶의 질, 행복, 여유 같은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일본처럼 비관적이지 말고, 성장경제 이후의 성숙경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교훈을 일본으로부터 얻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