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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선 "피할수 없는 반도체 전쟁…결국은 기술경쟁력"

2021 키플랫폼: 키맨 인터뷰 - 김상선 한국과학기술평가원(KISTEP) 원장

한고은 | 2021.04.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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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선 KISTEP 원장. /사진=KISTEP

반도체 웨이퍼를 들고 전세계 19개 글로벌 기업 CEO(최고경영자)를 불러모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과학기술 경쟁력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팍스 테크니카'(Pax Technica) 시대의 상징적인 장면이다. 반도체뿐만이 아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부터 기후변화 대응까지 과학기술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이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은 과학기술이 사회·경제·문화·환경 등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평가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기술수준·영향평가'를 시행하는 기관이다. 최근에는 보다 긴 호흡에서 미래 과학기술을 전망하고, 국가 어젠다를 제시하는 과학기술 싱크탱크로서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김상선 KISTEP 원장은 "첨단기술을 둘러싼 자국우선주의로 글로벌 밸류체인(GVC)이 와해되고 지역 밸류체인(RVC)이 등장한데 이어 이제 반도체를 매개로 한 가치동맹 밸류체인(AVC)에 동참할 것을 강요받고 있는 형국"이라며 "반도체를 넘어 글로벌 기술협력 전략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집합의 해체: 적응적 실행의 내재화'를 주제로 오는 28~30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리는 머니투데이 글로벌 콘퍼런스 '2021 키플랫폼'(K.E.Y. PLATFORM 2021)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넥스트 노멀 시대의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인사이트를 전할 예정이다. 다음은 김 원장과의 사전인터뷰 일문일답.

-미국이 반도체 산업을 '국가 인프라'로 규정하고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나서고 있는데.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 인프라에 500억달러(약56조원)를 투자하기로 하면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19개 기업을 불러 반도체 인프라에 대한 미국 내 투자와 생산을 독려했다. 트럼프 정부가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이었다면 바이든 정부는 아군을 든든하게 확보해 전쟁에 나서는 전략이다. 우리로서는 미국의 반도체 가치동맹에 합류할지, 중국의 홍색공급망에 머물지,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인 상황이다.

결국은 기술경쟁력이다. 대만 TSMC가 중국에 반도체 공급을 끊었지만 중국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이유는 대만이 기술적 우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에 공장이 없는 대만과 우리는 다르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그들이 꼭 필요로 하는 우리의 기술을 찾고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반도체 특별법 제정, K-반도체 벨트 등 다양한 대책과 제안이 나오고 있다.
▶정부와 민간이 강한 협력체계를 만들고 서로의 역할을 정확히 분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는 미래원천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필요한 인력을 키우며 우리 기업이 국제경쟁에서 불리하지 않도록 조세 등 제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 또 LG-SK 배터리 분쟁에서 보듯 기업간 협력이 잘 안되는 부분이 있다. 정부가 적극적인 중간자 역할을 맡아 민-관, 산-산, 산-학이 협력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KISTEP도 조만간 글로벌 STI(과학기술혁신) 포럼을 가동해 급변하는 팍스 테크니카 시대에 과학혁신 전략을 어떻게 짜야할지 고민할 것이다.

-최근 KISTEP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중국이 SCI 논문 발표수, 피인용수 모두에서 미국을 꺾고 1위를 차지했다.
▶미중 기술패권전쟁이 과학기술 분야 논문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SCI 논문 발표 성과가 기술적 성과와 산업경쟁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지연(Time Lag)이 있을 수밖에 없다. 주목할 것은 그 시간마저도 포용하겠다는 중국 정치인들의 자세다.

"10년 동안 단 하나의 칼을 가는 심정으로 매진하겠다. 과학기술 종사자들이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부담을 확실하게 덜어주겠다"는 리커창 중국 총리의 선언이 바로 그것이다. 선언으로 그치는 것도 아니다. 첨단 신소재 등 8대 산업과 인공지능 등 7개 첨단기술 영역을 선정해 매년 R&D(연구개발) 투자를 7% 이상 늘리겠다는 목표까지 제시했다. 참으로 감탄스러운 자세다.

-한국도 국가 R&D 100조원 시대가 열리면서 민관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사회문제 해결에 보다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민간의 R&D 역량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던 시절에는 정부 R&D가 국가경제 발전을 위한 제조업 경쟁력 제고에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국가 R&D 100조원 시대를 맞는 오늘날 정부 R&D 비중은 20%대에 불과하다. 민간이 잘하는 것은 민간에 맡기고, 정부 R&D는 기초·원천연구, 공공 목적 연구, 기후변화와 전염병 같은 글로벌 문제 해결, 과학기술 인력 양성과 인프라 구축 등에 집중해야 한다.

-매년 국가 총예산의 일정비율(약 5%)을 과학기술 분야에 배정하는 방식을 제안한 바 있다.
▶올해 정부 R&D 예산은 전년대비 13.1% 증가한 27조4000억원이다. 한해 100조원 규모는 GDP 대비 비율이 세계 2위(4.85%)로 적다고 할 수는 없다. 코로나19로 여의치 않은 나라 곳간 사정을 생각하면 과학기술에 대한 배려에 감사하면서도 국민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어깨가 무겁다.

과학기술이 곧 힘이 되는 팍스 테크니카 시대에는 모든 분야의 문제 해결이 과학기술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은 베고 죽는다'는 말이 있다. 국가 재정의 일정 비율을 농부의 심정으로 과학기술에 투자해야 한다. 과학기술계도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야 한다.

-2050년 탄소중립 사회 달성이라는 도전적 목표가 세워졌다. 현재 우리의 역량은 어느 수준이고 도전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미국의 이상 한파, 인도 히말라야 산사태와 홍수, 우리나라의 최장 기간 장마와 역대급 폭염은 모두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이다. 인류 생존에 직결되는 기후변화 문제에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관심을 가지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해 10월 대통령의 '2050 탄소중립' 선언 이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1인당 탄소배출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6위로 매우 높은 나라다. 철강, 시멘트, 화학 등 탄소배출이 많은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 때문이다. 반면 탄소중립 기술 수준은 최고기술 보유국인 미국과 EU(유럽연합)에 비해 80% 수준이다. 과학기술혁신본부와 KISTEP은 산업계의 수요를 반영한 '2050 탄소중립 기술로드맵'을 통해 장기적 관점의 기술개발 계획을 제시하려 한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의 탄소중립 R&D 성과가 산업의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기술이전을 지원하는 부분도 신경써야 한다.

-팍스 테크니카 시대, 개인들은 어떻게 적응해야 하나.
▶전문가를 신뢰하고 과학기술 기반의 사고체계를 갖추자고 제안하고 싶다. 코로나19로 인포데믹(Infodemic·정보와 전염병의 합성어)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가짜뉴스와 비과학적인 정보들이 방역을 어지럽히고 막대한 손실을 끼쳤다. 국민 개개인이 과학기술에 근거한 판단과 사고를 하고, 정부 당국과 전문가를 신뢰해준다면 가짜뉴스가 설 자리는 줄어들 것이다. 생활 속에서는 일회용품을 줄이고 에너지를 아끼는 작은 실천들을 할 수 있다. 내 작은 행동 하나가 바로 기후변화 재앙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자각을 가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연구현장에서 묵묵히 역할을 다하고 있는 과학기술인들에게도 응원과 격려를 부탁한다. 과학기술이 우리의 희망이라면 과학기술인은 우리의 자랑이다. 연구자들이 최고의 환경에서 최선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KISTEP도 열심히 돕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