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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국민소득이 국정목표된 순간 위기온다"

[2017 키플랫폼: 리마스터링 코리아][인터뷰]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한국공인회계사회장)

정진우 조철희 김상희 | 2017.04.11 05:10

편집자주 |  '팬더모니엄'(대혼란, Pandemonium). 대한민국의 2017년 오늘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말입니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으로 대한민국은 그동안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가 지금 살얼음판을 걷고 있습니다. 머니투데이 글로벌 콘퍼런스 키플랫폼(K.E.Y. PLATFORM)은 이런 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할 수 있는 비법을 오는 4월27~28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공개할 예정입니다. 이에 앞서 지난 6개월 동안 키플랫폼과 함께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과 전략을 고민했던 국내·외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앞으로 한 달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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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나라 가운데 '국가 대전략'이 없었던 나라들은 모두 지도에서 사라졌다. 전세계 역사를 보면 반드시 그랬다."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차기 정부의 성공 조건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역사에서 사라진 카르타고 얘기를 꺼냈다. 카르타고는 기원전 6세기 무역 대국으로 성장한 나라로, 지중해 무역 패권을 놓고 로마와 세 차례 충돌(포에니전쟁)했다.

카르타고는 2차 포에니전쟁 초기 로마군 8만명을 전멸 시켰다. 승리에 도취한 카르타고는 치밀한 전략 없이 이후 벌어진 전쟁에 나섰고, 결국 로마에 대패했다. 오합지졸이 된 카르타고는 3차 포에니전쟁 이후 결국 지도에서 사라졌다.

기획재정부 1차관과 청와대 경제수석, 지식경제부 장관 등을 역임하며 30년 넘게 국정 최일선에서 관료로 일한 최 전 장관은 "카르타고는 국가 대전략 부재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잃은채 역사에서 사라졌다”며 "대통령 파면으로 국가적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이 반드시 명심해야할 교훈"이라고 강조했다.

머니투데이의 글로벌 콘퍼런스 키플랫폼(K.E.Y. PLATFORM)은 지난 7일 최 전 장관을 만나 차기 정부의 정책 과제에 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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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

- 한달 후면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고, 새 정부가 출범한다.
▶ 차기 정부는 대한민국의 존속과 발전을 위한 국가 대전략을 면밀하게 짜야한다. 국가 대전략은 나라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국력을 모아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영역에서 필요한 핵심 정책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는 정치 논리에 따라 '1인당 국민소득'이 국가의 목표가 되는 순간 경제 위기가 찾아온다. 1997년 외환위기는 국민소득 1만달러 달성이란 정치적 구호가 배경이었다. 국민소득 1만 달러 달성을 위해 환율정책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능력을 냉정하게 평가해야 제대로 된 국가 대전략이 나온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더라도, 국가 역량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이를 토대로 산업·기술의 새로운 흐름, 국제 역학관계에 대한 주도면밀한 분석을 해보자. 과거를 잊고 미래를 위해 나간다는 차원에서 접근이 필요하다.

- 차기 정부가 무엇을 가장 신경써야할까.
▶ 중국과 관계 재정립이 급선무다. 이건 경제적 문제다. 대한민국 경제에서 중국을 빼놓고 전략을 짜기 힘들다. 정부가 전략없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문제를 다루다 벌어진 일이다. 사드는 군사 안보상 문제다. 전략적 모호성을 가지면 안된다. 사드배치는 조용히 처리할 군사 기밀사항이다. 협상의 여지가 없는 군사보안 이슈란 얘기다. 군사정보와 이슈는 공개하는 순간 파장이 커진다. 왜 대내·외에 공개해 문제를 키웠는지 의문이다.

- 이 문제를 해결할때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문이 많아 보인다.
▶ 물론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협치밖에 전략이 없다. 차기 대통령은 ‘로우키’(low-key, 신중한) 전략을 쓸 수밖에 없다. 정부가 각 정당 쫓아 다니면서 설득하고, 해결책을 찾아야한다. 그래야 복잡하게 꼬여버린 중국 관계나 사드 문제의 실타래를 풀 수 있다.

- 우리나라가 수년째 저성장에 빠졌는데,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
▶ 공직을 떠난 상황이라 구체적으로 말하긴 어렵다. 다만, 지금 내가 맡고 있는 분야에서 본다면 회계제도만 바꿔도 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재무제표를 보면 건전성을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기업 감사 시스템인 ‘자율선임제‘로 건전성을 담보할 수 있을까. 내가 재판을 받아야 할 상황인데, 판사를 내가 고른다는 건 말이 안된다. 기업이 아무 제약 없이 자유 재량으로 회계법인을 고를 수 있는 상황에선 회계부정의 고질병을 고칠 수 없다.

- 어떻게 바꿔야할까.
▶ 정부가 기업을 감사할 회계사를 지정하는 등 지정선임제를 도입해야한다. 회계 부정을 없애면 자원배분 왜곡을 막을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문제, 모뉴엘 사태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기업에 투입된 혈세를 일자리 등에 투자했다고 생각해봐라.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2%대에 머물고 있는데, 회계 투명성만 높여도 성장률을 4%대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 후배 관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항상 과대 선전을 경계해야한다. 한국이 그동안 괄목할만큼 성장했지만, 여전히 글로벌 경제에선 갈길이 멀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등 국제기구 조사에서 한국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과대 포장으로 국민에게 알리면 안된다. 정부의 기본 자세는 신중함이다. 또 나랏일을 하는 관료라면 소신이 있어야한다. 대통령이나 장관 등 윗 사람에게 바른 얘기를 해야한다. 그런 참모가 필요하다. 리더가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있으려면 주변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금은 봉건시대가 아니다.